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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 vs r3
11[[분류:랜드해협]][[분류:유고랜드]][[분류:루이나]][[분류:살인 사건]][[분류:1996년 범죄]][[분류:주둔군 범죄]]
22[include(틀:사건사고)]
33
44[[파일:진양지구 부부 살인 사건 현장.jpg|width=100%]]
5{{{-2 사건 현장이 있던 나자프정 진양지구 세영동 골목. 1996년 11월 14일 오후 촬영.}}}
5{{{-2 사건 현장이 있던 나자프정 진양통3가의 골목. 1996년 11월 14일 오후 촬영.}}}
66
77 * '''루이나군 진양지구 부부 살인 사건'''
8 * '''진양 사건''' · '''11.14 사건''' {{{-2 (유고랜드 내 통칭)}}}
8 * '''진양사건''' · '''11.14 사건''' {{{-2 (유고랜드 내 통칭)}}}
99 * '''나자프 사건''' {{{-2 (루이나 내 통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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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tablealign=right><tablewidth=450><tablebordercolor=#131230><tablebgcolor=#fff,#1c1d1f><bgcolor=#131230><color=#ffc224> '''{{{+1 루이나군 진양지구 부부 살인 사건}}}''' ||
11||<-2><tablealign=right><tablewidth=450><tablebordercolor=#131230><tablebgcolor=#fff,#1c1d1f><bgcolor=#131230><color=#ffc224> '''{{{+1 루이나군 나자프 부부 살인 사건}}}''' ||
1212||<width=25%><colbgcolor=#131230><colcolor=#ffffff> '''발생 일시''' ||1996년 11월 14일 02시경 ||
1313|| '''사건 종료''' ||1996년 11월 14일 02시 20분경 ||
14|| '''발생 장소''' ||유고랜드 나자프정 진양지구 세영동 128-6 ||
14|| '''발생 장소''' ||유고랜드 나자프정 진양통3가 19-6[* 현 나자프정 진양로3가1길 6(진양지구, 3648)] ||
1515|| '''유형''' ||강도살인, 주둔군 범죄 ||
1616|| '''발생 주체''' ||[[루이나 육군]] 제3보병사단 제2여단 소속 병사 2명 ||
1717|| '''범인''' ||아르카디 M. 볼코프[br]니콜라 R. 베르티에 ||
......
2121
2222> 피고인들은 세 시간에 걸쳐 거절당했다는 이유로 두 사람을 죽였고, 방 안에서 울고 있던 한 살 다섯 달 된 아이를 그대로 둔 채 문을 닫고 나갔다. 이 법정은 기록 어디에서도 참회의 흔적을 찾지 못하였다.
2323----
241997년 7월 18일, 나자프정 지방법원 제2형사부 판결문
241997년 7월 18일, 아부쿠찬지방법원 제2형사부 판결문
2525
2626> 협정은 고쳐졌다. 기지는 그대로 있다. 그리고 그 집에 살던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
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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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1[clearfix]
3232
3333== 개요 ==
341996년 11월 14일 유고랜드 나자프정 진양지구에서 [[루이나 육군]] 병사 2명이 마약을 거래하던 현지인 부부를 살해한 사건. 유고랜드 법원이 루이나군 군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유일한 사례이며, 2001년 [[루이나-유고랜드 주둔군지위협정]] 개정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341996년 11월 14일 유고랜드 아부 쿠찬 나자프정에서 [[루이나 육군]] 병사 2명이 마약을 거래하던 현지인 부부를 살해한 사건. 유고랜드 법원이 루이나군 군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유일한 사례이며, 2001년 [[루이나-유고랜드 주둔군지위협정]] 개정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3535
3636== 배경 ==
3737=== 루이나군의 유고랜드 주둔 ===
38유고랜드는 랜드해 남안에 면한 국가로, 서쪽 경계 너머가 공산권[* 고랜드, 여러 반군 포함]이다. 1957년 루이나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이래 루이나 육군과 공군이 상시 주둔해 왔으며, 1996년 당시 주둔 병력은 약 3만 8,000명이었다. 주둔지는 대부분 접경에서 100km 이내의 동북부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중 최대 규모가 나자프정 진양지구의 발몽 기지였다.
38유고랜드는 랜드해 남안에 면한 국가로, 서쪽 경계 너머가 공산권[* 고랜드, 여러 반군 포함]이다. 1957년 루이나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이래 루이나 육군과 공군이 상시 주둔해 왔으며, 1996년 당시 주둔 병력은 약 3만 8,000명이었다. 주둔지는 대부분 접경에서 100km 이내의 동북부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중 최대 규모가 나자프정의 발몽 기지였다.
3939
40발몽 기지는 1958년 개설되어 사건 당시 루이나 육군 제3보병사단 제2여단 및 지원부대 약 6,500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기지 면적은 진양지구 전체 면적의 약 11%를 차지했다.
40발몽 기지는 1958년 개설되어 사건 당시 루이나 육군 제3보병사단 제2여단 및 지원부대 약 6,500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기지 면적은 현 진양지구 전체 면적의 약 11%를 차지했다.
4141
4242=== 진양지구 ===
43나자프정은 유고랜드 동북부 내륙의 정(政)으로, 정 인구의 다수는 나자프계이다. 이에 비해 진양지구는 정 서부의 구릉지대에 형성된 진양계 주민 밀집 지역으로, 1996년 기준 인구는 8만 8,000여 명이었다.
43나자프정은 유고랜드 서북부 내륙의 정(政)으로, 인구의 다수는 한국계다. 이 중 진양통(현 진양지구) 남부의 구릉지대에 형성된 주민 밀집 지역으로, 1996년 기준 인구는 10만 8,000여 명이었다.
4444
45진양지구의 경제는 사실상 발몽 기지에 종속되어 있었다. 기지 정문에서 세영동으로 이어지는 약 600m 구간에는 술집·식당·세탁소·환전소·숙박업소가 밀집해 있었고, 등록 업소만 640여 개였다. 진양지구 사업자등록의 절반 이상이 이 구간에 몰려 있었으며, 주민 상당수가 기지 군무원이거나 기지촌 상권 종사자였다.
45진양통의 경제는 거의 발몽 기지에 종속되어 있었다. 기지 정문에서 장필시대로로 이어지는 진양통3가 약 600m 구간에는 술집·식당·세탁소·환전소·숙박업소가 밀집해 있었고, 등록 업소만 640여 개였다. 사업자등록의 절반 이상이 이 구간에 몰려 있었으며, 주민 상당수가 기지 군무원이거나 기지촌 상권 종사자였다.
4646
47기지촌에는 1980년대 후반부터 주둔 병사를 상대로 하는 소규모 마약 거래망이 형성되어 있었다. 나자프정 경찰청은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진양지구에서 마약류 사범 411명을 검거했으나, 대부분 최말단 소매상이었고 공급선은 한 번도 규명되지 않았다.
47기지촌에는 1980년대 후반부터 주둔 병사를 상대로 하는 소규모 마약 거래망이 형성되어 있었다. 아부쿠찬경찰청은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진양통에서 마약류 사범 411명을 검거했으나, 대부분 최말단 소매상이었고 공급선은 한 번도 규명되지 않았다.
4848
4949=== 주둔군지위협정 ===
50501958년 3월 체결된 [[루이나-유고랜드 주둔군지위협정|주둔군지위협정]]은 제22조에서 형사재판권을 배분했다. 루이나 군인이 공무집행 중에 저지른 범죄는 루이나가, 그 밖의 범죄는 유고랜드가 1차 재판권을 갖되, 유고랜드는 루이나의 요청이 있으면 재판권 포기를 '호의적으로 고려'하도록 되어 있었다.
......
5555
5656== 피살된 부부 ==
5757||<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131230><tablebgcolor=#fff,#1c1d1f><rowbgcolor=#131230><rowcolor=#ffffff> '''이름''' || '''나이''' || '''비고''' ||
58||한 제욱 ||27세 ||1969년생. 남편 ||
59||소 연희 ||23세 ||1973년생. 아내 ||
60||한 다율 ||1세 5개월 ||딸. 생존 ||
58||한제욱 ||27세 ||1969년생. 남편 ||
59||소연희 ||23세 ||1973년생. 아내 ||
60||한다율 ||1세 5개월 ||딸. 생존 ||
6161
62부부는 세영동 128-6번지 2층 목조 건물의 1층 뒷방에 살았다. 등기상 용도는 환전·세탁 취급점이었고, 실제로도 낮에는 기지 출입 병사를 상대로 환전과 세탁을 받았다. 한제욱은 진양지구 토박이로 기지 보급창 하역 일용직을 하다 1993년 가게를 열었고, 소연희는 1994년 결혼하면서 함께 일했다.
62부부는 진양통3가 19-6번지 2층 건물의 1층 뒷방에 살았다. 등기상 용도는 환전·세탁 취급점이었고, 실제로도 낮에는 기지 출입 병사를 상대로 환전과 세탁을 받았다. 한제욱은 진양지구 토박이로 기지 보급창 하역 일용직을 하다 1993년 가게를 열었고, 소연희는 1994년 결혼하면서 함께 일했다.
6363
6464부부는 동시에 기지촌 마약 소매상이었다. 수사 결과 두 사람이 취급한 것은 헤로인과 합성 환각제였으며, 주 고객은 발몽 기지 병사였다. 거래는 대부분 외상으로 이루어졌고, 봉급일에 맞춰 대금을 회수하는 방식이었다. 부부의 위치는 공급망의 최말단이었고, 두 사람에게 물건을 대던 상선은 끝내 특정되지 않았다.
6565
66이 사실은 사건 초기부터 알려졌으나 수사와 재판의 쟁점이 되지는 않았다. 나자프정 검찰청은 피해자의 범죄 전력이 살인의 위법성 판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판 내내 유지했고, 1심과 항소심 모두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다만 루이나 일부 언론이 이 점을 부각하면서 유고랜드 여론이 크게 악화되는 원인이 되었다.
66이 사실은 사건 초기부터 알려졌으나 수사와 재판의 쟁점이 되지는 않았다. 아부쿠찬검찰청은 피해자의 범죄 전력이 살인의 위법성 판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판 내내 유지했고, 1심과 항소심 모두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다만 루이나 일부 언론이 이 점을 부각하면서 유고랜드 여론이 크게 악화되는 원인이 되었다.
6767
6868== 사건 경과 ==
6969=== 범행 ===
......
7373
747411월 14일 02시경 볼코프가 마당에 있던 손질용 숫돌로 한제욱의 뒤통수를 가격했고, 베르티에가 방 안에 있던 유리 재떨이로 소연희를 가격했다. 두 사람은 이어 면도칼로 부부의 목을 그었다. 부검 결과 두 사람 모두 경부 절창이 직접 사인이었으며, 그 밖에 다수의 둔기 손상과 안면 골절, 두피 탈락이 확인되었다.
7575
76범행 후 두 사람은 방 안에서 헤로인과 합성 환각제, 손목시계 2점, 금반지 1점, 현금 약 340달러 상당의 유고랜드 통화를 가지고 나갔다. 방 안쪽 요 위에 있던 딸 한다율은 다치지 않았다. 두 사람은 02시 20분경 현장을 떠나 03시 05분경 기지로 복귀했다.
76범행 후 두 사람은 방 안에서 헤로인과 합성 환각제, 손목시계 2점, 금반지 1점, 현금 4,600야옹을[* 약 340달러 상당] 가지고 나갔다. 방 안쪽 요 위에 있던 딸 한다율은 다치지 않았다. 두 사람은 02시 20분경 현장을 떠나 03시 05분경 기지로 복귀했다.
7777
7878=== 발견 ===
797911월 14일 오전 8시 40분경, 가게 문이 열리지 않은 것을 이상히 여긴 이웃 주민이 뒷문으로 들어갔다가 시신을 발견하고 신고했다. 한다율은 부모의 시신 옆에서 울고 있었으며, 발견 당시 저체온 증상이 있었으나 건강에 지장은 없었다.
8080
8181== 수사 ==
8282=== 초동수사 ===
83나자프정 경찰청 강력계는 현장 훼손 정도와 범행 도구의 혼용을 근거로 약물 복용자의 소행으로 추정했다. 현장에서는 지문 11점, 담배꽁초 6점, 혈흔이 묻은 군화 자국 일부가 채취되었다. 군화 자국의 규격이 루이나군 지급품과 일치한 것이 첫 단서였다.
83아부쿠찬경찰청 강력계는 현장 훼손 정도와 범행 도구의 혼용을 근거로 약물 복용자의 소행으로 추정했다. 현장에서는 지문 11점, 담배꽁초 6점, 혈흔이 묻은 군화 자국 일부가 채취되었다. 군화 자국의 규격이 루이나군 지급품과 일치한 것이 첫 단서였다.
8484
8585경찰은 전날 밤 가게 앞 실랑이를 목격한 주민 3명의 진술을 확보했다. 진술은 병사 두 명이 인종적으로 구별되었다는 점에서 일치했다.
8686
8787=== 합동수사반 ===
8811월 15일 나자프정 경찰청과 루이나 육군 범죄수사사령부(CID) 제12지구대가 합동수사반을 구성했다. 지위협정상 기지 내 수사는 루이나 측이 주관하고 유고랜드 경찰은 입회만 가능했으나, 이 사건에서는 CID가 이례적으로 적극 협조했다. CID는 11월 14일 당일 제2여단 전 병력의 외출 기록과 위병소 출입 기록을 보존 조치했고, 11월 16일에는 영내 개인 사물함 일괄 수색을 실시했다.
8811월 15일 아부쿠찬경찰청과 루이나 육군 범죄수사사령부(CID) 제12지구대가 합동수사반을 구성했다. 지위협정상 기지 내 수사는 루이나 측이 주관하고 유고랜드 경찰은 입회만 가능했으나, 이 사건에서는 CID가 이례적으로 적극 협조했다. CID는 11월 14일 당일 제2여단 전 병력의 외출 기록과 위병소 출입 기록을 보존 조치했고, 11월 16일에는 영내 개인 사물함 일괄 수색을 실시했다.
8989
909011월 18일 베르티에의 사물함에서 피해자 소유로 확인된 손목시계 1점이 발견되었다. 11월 19일 두 사람이 긴급체포되었다.
9191
9292=== 자백 ===
9393두 사람은 체포 직후 범행을 전면 부인했다. 볼코프는 사건 당일 밤 내내 기지 밖 다른 술집에 있었다고 진술했으나, 11월 20일 현장검증에서 해당 술집의 영업 종료 시각과 진술이 맞지 않는 것이 드러났다.
9494
9511월 21일, 나자프정 검찰청 진양지청 하명석 검사가 베르티에를 조사하면서 현장 사진 묶음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 번 보겠나"라고 물었다. 베르티에는 사진을 넘겨보다 30분 만에 범행을 인정했다. 볼코프는 같은 날 저녁 베르티에의 진술 요지를 제시받은 뒤 자백했다.
9511월 21일, 아부쿠찬검찰청 나자프지청 하명석 검사가 베르티에를 조사하면서 현장 사진 묶음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 번 보겠나"라고 물었다. 베르티에는 사진을 넘겨보다 30분 만에 범행을 인정했다. 볼코프는 같은 날 저녁 베르티에의 진술 요지를 제시받은 뒤 자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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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7두 사람의 진술은 가해 순서와 도구에서 일치했으나, 누가 면도칼을 썼는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엇갈렸다. 볼코프는 베르티에가 했다고 진술했고 베르티에는 볼코프가 했다고 진술했다. 타액 감정과 손잡이 지문 감정은 결론을 내지 못했으며, 법원은 공동정범으로 판단해 이 쟁점을 판결에 반영하지 않았다.
9898
......
128128||1998년 2월 26일 ||항소심 선고. 무기징역 ||
129129||1998년 6월 12일 ||상고 기각. 형 확정 ||
130130
1311997년 3월 11일 나자프정 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우태경)에서 첫 공판이 열렸다. 두 사람은 수사 단계의 자백을 번복하고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변호인은 약물로 인한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과, 한제욱이 먼저 흉기를 들었다는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1311997년 3월 11일 아부쿠찬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우태경)에서 첫 공판이 열렸다. 두 사람은 수사 단계의 자백을 번복하고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변호인은 약물로 인한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과, 한제욱이 먼저 흉기를 들었다는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132132
1331337월 18일 재판부는 두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심신상실 주장에 대해 범행 후 금품을 선별해 가져간 점과 귀대 시각을 계산한 점을 들어 사물변별능력이 유지되어 있었다고 보았고, 정당방위 주장은 피해자 손에 방어흔이 있을 뿐 공격흔이 없다는 부검 소견으로 배척했다. 초범인 점과 국방에 종사하는 신분이라는 점은 참작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13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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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139
140140== 반응 ==
141141=== 유고랜드 ===
1421996년 11월 26일 현장검증에는 주민 3,000여 명이 몰렸다. 경찰 병력 400여 명이 투입되어 현장 주변을 차단했으나 호송차가 진입하지 못해 검증이 1시간 40분 지연되었다. 이 장면이 전국에 보도되면서 사건은 진양지구의 사건에서 전국적 사안으로 바뀌었다.
1421996년 11월 26일 현장검증에는 주민 3,000여 명이 몰렸다. 경찰 병력 400여 명이 투입되어 현장 주변을 차단했으나 호송차가 진입하지 못해 검증이 1시간 40분 지연되었다. 이 장면이 전국에 보도되면서 사건은 전국적 사안으로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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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1997년 한 해 동안 진양지구와 수도에서 주둔군 범죄 대책을 요구하는 집회가 반복되었고, 12월에는 지위협정 개정을 요구하는 범국민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대책위의 요구는 세 가지로 정리되었다. 기소 시점 신병 인도, 재판권 포기 요청 제도의 폐지, 기지 주변 범죄에 대한 유고랜드 경찰의 기지 내 수사권 보장이었다.
1441997년 한 해 동안 진양통과 시디벨에서 주둔군 범죄 대책을 요구하는 집회가 반복되었고, 12월에는 지위협정 개정을 요구하는 범국민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대책위의 요구는 세 가지로 정리되었다. 기소 시점 신병 인도, 재판권 포기 요청 제도의 폐지, 기지 주변 범죄에 대한 유고랜드 경찰의 기지 내 수사권 보장이었다.
145145
1462000년 특별사면 발표 직후 진양지구에서 다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이때 나온 "사면은 누구의 권리인가"라는 구호는 이후 유고랜드 주둔군 문제를 다루는 담론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었다.
1462000년 특별사면 발표 직후 진양통3가에서 다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이때 나온 "사면은 누구의 권리인가"라는 구호는 이후 유고랜드 주둔군 문제를 다루는 담론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었다.
147147
148148=== 루이나 ===
149149루이나 국내 보도는 초기에 사건을 소략하게 다루었다. 사건 발생 이후 첫 한 달간 《르 나시오날》은 3건, 루이나 방송공사(RBC)는 2건을 보도했으며, 대부분 "유고랜드 주둔 병사 2명 현지 구속" 수준의 단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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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156
157157== 그 후 ==
158158=== 두 사람의 이후 ===
159니콜라 R. 베르티에는 1999년 7월 9일 나자프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유고랜드 법무부의 공식 발표는 급성 심부전이었다. 유족이 부검을 요구했으나 시신은 발표 나흘 뒤 루이나로 송환되었고, 루이나 측 부검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향년 25세.
159니콜라 R. 베르티에는 1999년 7월 9일 북부제6교도소에서 사망했다. 유고랜드 교정청의 공식 발표는 급성 심부전이었다. 유족이 부검을 요구했으나 시신은 발표 나흘 뒤 루이나로 송환되었고, 루이나 측 부검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향년 25세.
160160
161161아르카디 M. 볼코프는 2000년 9월 15일 유고랜드 대통령 이스마일 D. 카라니의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사면은 로널드 캘러핸 루이나 대통령의 유고랜드 방문 이틀 전에 발표되었다. 볼코프는 석방 당일 루이나로 송환되었으며, 복역 기간은 미결 구금을 포함해 3년 10개월이었다.
162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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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176
177177== 여담 ==
178178 * 유고랜드 법원이 루이나군 군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은 이 사건이 유일하다. 사형이 선고된 다른 주둔군 사건은 없으며, 무기징역이 확정된 사례도 이 사건을 포함해 두 건뿐이다.
179 * 사건 현장이던 세영동 128-6번지 건물은 1999년 철거되었다. 이후 부지는 공터로 남아 있다가 2007년 진양지구청이 매입해 소공원으로 조성했다. 공원에는 사건을 명시한 표지가 없으며, 표지 설치 요구가 2010년과 2016년 구의회에 제출되었으나 모두 부결되었다.
179 * 사건 현장이던 진양통3가 19-6번지 건물은 1999년 철거되었다. 이후 부지는 공터로 남아 있다가 2007년 진양지구청이 매입해 소공원으로 조성했다. 공원에는 사건을 명시한 표지가 없으며, 표지 설치 요구가 2010년과 2016년 구의회에 제출되었으나 모두 부결되었다.
180180 * 자백을 받아낸 하명석 검사는 이 사건 이후 나자프정 검찰청 강력부장을 거쳐 2005년 퇴직했다. 2011년 회고 인터뷰에서 그는 "사진을 보여준 것은 압박이 아니라 확인이었다"고 말했으나, 당시 조사 방식의 적법성을 두고는 이후에도 논란이 있었다.
181 * 발몽 기지는 2016년 유고랜드 중부의 통합기지로 이전하면서 폐쇄되었다. 기지 반환 이후 진양지구 인구는 2019년 기준 5만 1,000여 명으로 줄었다.
182 * 2018년 유고랜드 영화 《세영동》이 이 사건을 소재로 제작되었다. 영화는 가해자 측 서사를 전혀 배치하지 않고 발견 이후의 시간만을 따라가는 구성을 택했으며, 개봉 당시 루이나에서는 상영관을 잡지 못했다.
181 * 발몽 기지는 2016년 유고랜드 중부의 통합기지로 이전하면서 폐쇄되었다. 기지 반환 이후 진양통 인구는 2019년 기준 7만 1,000여명으로 줄었으나, 재개발 이후 16만 3,000명으로 증가하였다.
182 * 2018년 유고랜드 영화 《진양통》이 이 사건을 소재로 제작되었다. 영화는 가해자 측 서사를 전혀 배치하지 않고 발견 이후의 시간만을 따라가는 구성을 택했으며, 개봉 당시 루이나에서는 상영관을 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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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84== 관련 문서 ==
185185 * [[유고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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